구찌로부터의 독립

구찌로고
구찌

패션이 아니라 어떤 업계에서도 그런 면이 있죠. 쩐주와 재능 있는 종업원이 언제까지나 함께 가기는 어려운 거잖아요. 약간 긴장 관계가 있고 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그렇고 CEO도 그렇고. 2004구찌에서 톰 포드가 떠나는 날이 온 겁니다. 자 이때도 흥미로운 부분은요, 왜 사람들이 그런 얘기들 하잖아요. 지금 저 사람이 아무리 잘 나가보여도 큰 조직에 있어서 그런 거지 거기서 나오면 별 볼일 없다. 조직의 힘을 등에 업고 일하는 거지 저 사람 자체가 뭐 있겠냐. 톰 포드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아무리 망해가는 브랜드를 완전히 되살렸다고 해도 구찌를 떠날 때는 비슷한 소리를 들었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재능이란 건 어디서든 빛날 수 있는 거죠.그리고 톰 포드는 그냥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획자이자 마케터이자, 사업자였죠. 구찌에서 사실상 쫓겨나서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나서 톰 포드의 행보가 신기했던 건 곧바로 의류 사업부터 손을 댄 게 아니라는 지점이에요.톰 포드는 당시를 두고 이렇게 회상을 하죠. 내 역할도 많았지만 구찌라는 브랜드에는 이미 뭐가 많았다.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뱀부도 있고 초록색 빨간색 줄무늬도 있고 또 호스빗도 있고 그리고 구찌에는 무엇보다 막강한 유통망이 있어서 내가 디자인하면 6개월 만에 옷이 만들어져서 전 세계 매장에 일사불란하게 쫙 풀리고 구찌라는 브랜드의 힘을 더 이상 자신이 쓸 수 없다는 걸 완전히 깨달은 거죠.

톰 포드 브랜드의 성장

톰포드 남성복
남성복

아무튼 구찌를 떠난 톰 포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뭐냐, 책을 만든 거였어요. 갑자기 무슨 책이야? 디자이너가? 자기 이름을 커다랗게 표지에 박힌 자기의 스타일을 가득 담은 . 구찌를 떠나서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해야 된다. 이걸 톰 포드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이듬해 톰 포드는 옷이 아니라요. 안경과 화장품 사업에 뛰어듭니다. 세계적인 안경, 화장품 생산 업체인 마르콜린 그리고 에스티로더와 손을 잡으면서요. 왜 명품 산업에서 그렇게 얘길하거든요. 명품에 관심 있어도 젊은 사람들이 곧바로 백이나 드레스, 수트 같은 걸 사기엔 주머니 사정이 안 따라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래서 럭셔리 브랜들들이 엔트리 상품으로 향수나 안경 같은 걸 만들어서 팔고 이걸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그 장벽을 낮춘다. 왜 쉽게 생각해보면 에르메스백, 샤넬백, 구찌백은 사기 힘들어도 에르메스, 샤넬 향수나 구찌 선글라스는 살 수 있잖아요. 실제로 그런 부문 매출이 상당히 높기도 하고요. 그렇게 안경, 화장품 등등으로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서 알리고 그 이름을 딴 브랜드 상품을 사람들의 소비 반경에 들게 한 다음에는요. 2007년 드디어 톰 포드가 이제 본진을 치기 시작하죠. 남성복이었습니다. 뭐 톰 포드 스스로가 이미 셀럽이니깐 스스로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겠고요. 그리고 이때도 혼자 다 뭔가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가장 남성복 사업을 잘하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손을 잡는 영리함을 보여줬고요. 남성복의 경우에 제냐만큼 슈트에서부터 셔츠, 타이, 애슬레져룩까지 다 잘하는 업체는 없으니까. 또 그러면서도 브랜드의 독립성은 살려야 되니까 원단 개발만큼은 제냐랑 함께 해서 그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고 톰 포드 의상의 다름과 디테일을 살려냈다고 하죠. 또 운도 좋았던 게요. 톰 포드가 아까 2007년에 남성복을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그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잖아요. 대개 그렇지만 일반 소비자들과 달리 명품 소비하는 계층은 경제위기를 상대적으로 빨리 극복하는 편이니까 경제위기를 넘어가서 돌아온 럭셔리 소비자들 중에서 새로운 걸 찾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고 그 사람들이 값비싼 톰 포드 남성복에 열광을 했죠. 그리고 또 하나의 전략이 통했던 게요. 확고한 명품이 돼야 되니까 매장을 어디다 열어야겠어요?일단 먼저 열어야 되는 매장들이 장소가 있을 거 아니에요? 핫스팟들...파리, 런던, 로마 이런데 열어야 될 거 아니에요.근데 상대적으로 신생 브랜드니깐 자금력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생각을 하다가, 유럽보다는 미국, 특히 그중에서도 자신이 잘 알고 강점이 있는 뉴욕에 매장을 열기로 했던 거예요. 전 세계 경제의 중심인 곳을 딱 치는 거죠. 그리고 나서 여성복으로도 복귀하고 예전처럼 미디어를 다루는 걸 잘해서 소위 인싸들만 비밀스럽게 모아서 컬렉션을 공개하고요. 당시에 핸드론으로 사진이나 영상 같은 것도 못 찍게 했대요. 더 비밀스럽게 뭔가 더 있어 보이게 알려지도록 하려는 거였겠죠. 자기가 고용한 작가들한테만 사진, 영상 찍게 하고. 그러면서 톰 포드는요. 구찌에서 사실상 쫓겨난지 불과 10년도 안 돼서 전세계인의 인식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또 해마다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톰 포드를 명품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브랜드 매각과 명품의 품격

에스티로더
에스티로더

하지만 이런 톰 포드도 SNS 세상에 적응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었죠. 이건 뭐 예전처럼 자기가 원하는 이미지만 딱 보여주는 통제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첨엔 난 그런 식으로 안해. 이런 느낌으로 나오다가 현실을 자각하는 거죠.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고 재빨리 변신해서 다른 행보를 보였어요. 그리고 여기서도 집념을 보여주죠. 어떤 식이였냐면 스스로가 거의 모든 쇼핑을 이제 온라인에서 하기 시작한 거죠. 생필품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자동차까지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영상통화로 보고 이렇게 변신에 성공한 끝에 그러다가 아예 나중에는요. SNS에 올릴 만한 순간을 만드는 게 지금 시대 쇼의 핵심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또 바꿨대요. 미디어가 바뀌면 패션쇼의 형식도 바꿔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변신의 결정판이 작년에 있었던 브랜드 매각이었던 거 같아요. 스스로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고 하니까 패션에 대한 열정이 영화로 점차 옮겨간 거 아니냐. 뭐 이런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닌거 같고 또 아마도 단지 돈을 위해서 그러지도 않았을 거라 봐요. 왜냐? 돈은 이미 충분히 많으니깐. 톰 포드는 아마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가 대자본이라는 날개를 달면서 영속하길 바랐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브랜드는 팔렸지만 이후에도 계속 브랜드의 방향 설정하는 역할은 자기가 맡기로 했어요. 과거 주요 명품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이요. 창업 가문의 싸움, 죽음처럼 자신의 뜻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브랜드를 자기 손에서 떠나보내야 했다면 톰 포드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이름과 같은, 분신과 같은 브랜드를 더 큰 세상에서 키우게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구요. , 성공한 뒤에도 머리맡에 자다 깨서 뭔가를 메모하려고 메모지를 붙여가면서 일에 집착하고 스스로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죽을 때까지 일하겠다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창조성을 발휘하고 있는 톰 포드. 그런 톰 포드가 만들고 더 큰 세상으로 떠나보낸 브랜드 톰 포드는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될까요?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난 뒤에도 빛을 잃지 않은 명품들처럼 빛나는 이름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구찌를 부활시킨 살아있는 전설, 자신의 이름으로 명품 재벌이 된 톰 포드 이야기

명품 재벌 톰 포드 이야기 007 제임스 본드가 영화에서 입고 나오는 슈트,또 영화 싱글맨에서 콜린퍼스가 입은 슈트… 끝내주죠.드라마 도깨비에서도 나오고. 근데 이 슈트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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