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 모노그램
루이뷔통 모노그램

 

LOUIS VUITTON 루이뷔통 소개

루이뷔통 로고
루이뷔통 로고

명품 중에서 브랜드 가치가 제일 높은 기업, 아니 전 세계 패션기업 중에서 브랜드 가치가 제일 높은 기업, 에르메스도 아니고 샤넬도 아닙니다. 이 브랜드가 나이키랑 엎치락뒤치락해요. 수많은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높은 매출을 올려서 년 매출이 약 18조 원대, 아마 프랑스 사람들 중에서 제일 유명한 이름 중 하나가 이 브랜드 창업자 이름 아닐까 싶어요. 다른 명품 브랜드 소개할 때는요, 그걸 쓰는 연예인, 셀럽들 되게 많이 보여드렸는데요, 이 브랜드 쓰는 셀럽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 많고요, 패리스 힐튼, 카일리 제너, 카다시안, 켄달 제너, 채드윅 보스만, 리한나 등등.... 한때 3초 백(Speedy Bag)이란 별명이 붙어였어요. 이 브랜드 핸드백이 3초마다 한 번씩 보인다고 해서요. 짝퉁도 이 브랜드가 제일 많아요. 똑같이 베끼기 위해 한 가지 브랜드만 집중적으로 생산했습니다. 피 튀기는 암투로 브랜드 주인이 바뀌면서요, 이제는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을 떠받치고 있는 브랜드. 그래도 계속 많이 팔리고 있는 세계 최고, 최대의 명품 브랜드, 166년 역사의 루이뷔통입니다.

 

버질 아블로

버질 아블로
버질 아블로

왜 내장을 밖으로 끄집어낸 것 같은 모양의 신발 본 적 있어요? 운동화? 한때 BTS, 지디, 엑소, 현아 씨 같은 내로라하는 셀럽들이 다 신고 다녔었던, 마치 피카소 그림 느낌이 나는데요, 기존의 신발을 분해하고 재구성한 리셀가가 되게 비쌌던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가 나이키랑 콜라보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2018년에 루이뷔통이 아까 그 버질 아블로를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영입했죠. 그때 ‘와… 루이뷔통이 뭔가 다르네. 1등은 뭔가 다르다. 파격적이다이런 평가가 나왔어요. 워낙 버질 아블로가 핫한 인사였지만요, 흑인 디자이너가 드문 보수적인 명품업계에서 업계 1위가 파격적으로 움직인 거니까요. 근데 1854년에 처음 만들어져서 거의 100년 넘게 잠들어있다시피 했던 루이뷔통이 이렇게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게 처음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도 분명했죠.

 

루이뷔통의 태생과 초기역사

루이뷔통 가문
루이뷔통 가문

그러면 대략적인 역사를 한번 짚고 넘어가 볼게요. 1836년쯤 루이비통의 창업자 루이뷔통이 16살에 파리에 도착합니다.

프랑스와 스위스 접경지대에 있는 프랑스 앙 셰라는 지역에 있는 집을 떠나서 파리로 일하러 간 거죠. 지금 찾아보니깐 안 쉬고 가도 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거든요. 근데 이걸 걸어갔어요. 걸어가면서 돈 떨어지면 일하고, 또 돈 떨어지면 일하면서 걸어갔어요. 기록마다 다른데 최소 1년 넘게 걸린 것 같아요. 파리에 도착해서는 마레샬이라는 여행용 트렁크 제작자의 수습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17년을 일하거든요. 주로 부자나 귀족들이 마차나 기차, 배로 여행을 할 때인데, 이 여행객들의 트렁크를 만들고 짐도 싸주는 일을 할 거예요. 아주 솜씨가 야무졌던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아내죠, 외제니 황후의 트렁크를 만들고 짐도 싸주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1854년 독립해서 자기 이름을 건 가게를 차리죠. 이게 루이뷔통 브랜드의 시작이었습니다.

루이뷔통 트렁크
루이뷔통 트렁크

연예인 트렁크로 유명한 리모와 있잖아요. 그거 역시 루이뷔통이 소속된 LVMH그룹 소속인데, 아무튼 지금은 여행용 트렁크 어때요? 어떤 모양이에요?보통 직사각형 형태잖아요. 가볍게 만드려고 하고, 근데 당시엔 여행용 트렁크가 나무나 가죽으로 만들고 윗부분은 둥근 그런 형태였어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보석상자 같은 있잖아요.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한 미국의 골동품 경매업체는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여행 가려면 짐들을 이렇게 쌓아놔야 할 거 아니에요. 근데 운이 안 좋아서 자기 여행용 트렁크가 맨 밑에 깔리면 내용물도 부서질 수 있고 가방도 부서질 수 있으니깐,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가방 밑에 안 깔리게 하고 맨 위에 두려고 위를 둥글게 만들었다 이런 설명을 하더라고요. 또 다른 설명은 비가 오거나 물이 위에 있을 때 흘러내리게 하려고 아무튼 근데 계속 그런 트렁크들만 생기니깐 쌓기가 힘들어질 거 아니에요. 1858년에 방수처리한 가벼운 캔버스 재질의 직육면체 모양의 여행용 트렁크를 만듭니다. 루이비통의 트렁크는 가벼웠고 여러 개 쌓기도 좋았고요, 프랑스 황후(외제니 드 몽티즈) 가방을 만들어준 사람이잖아요. 여행을 다니는 부유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짝퉁이 가장 많은 명품 가방은? 짝퉁 명품 가방의 절반 이상이 루이뷔통을 따라한 거다’이런 조사결과도 있어요. 근데 그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1800년에도 솜씨는 달랐겠지만, 비슷하게 만들기는 그렇게 어렵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2세 경영에 들어간 루이뷔통의 아들 이름이 조르주 비통인데요, 모조품을 막기 위해서 트렁크에 무늬를 입히기 시작해요. 1872년 줄무늬 캔버스 사용, 1888년은 다미에 캔버스(체크무늬), 1896년에는 드디어 루이뷔통(Louis Vuitton)의 L V를 합친 지금의 모노그램 무늬가 탄생합니다. 1889년엔 도난방지용 자물쇠도 개발하고 그리고 탐험가들이 주문을 하니깐 내구성을 직접 테스트하겠다고 아들이 들고 사막을 건너가고 그러기도 했어요. 신기한 사람인지? 장인정신인지? 그리고 이후에는 샤넬의 가브리엘 샤넬(패션디자이너)이 직접 주문해서 만들었다는 알마백(Alma Bag). 이게 나중에는 일반에 판매되죠.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죠? 샤넬이 루이뷔통한테 내 가방 좀 만들어죠. 루이뷔통 가방 들고 다니고, 그건 마치 스티브잡스가 갤럭시 쓰는 거랑 비슷한? 그리고 시대의 연인 오드리 헵번이 좋아해서 자기 몸에 맞는 작은 사이즈를 특별 주문해서 들고 다녔다는 스피디백(Speedy Bag), 이게 그 3초 백으로 유명한 거예요. 시내나 강남 같은데 가면 3초마다 하나씩 보인다는 거죠. 지하철에 가면 막 다다다 다다.이렇게 여행용 트렁크 위주로 제작하던 루이뷔통이 자동차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에르메스 같은 다른 명품 브랜드처럼 손가방이나 여행용 가방 이런 거 만들면서 큰 인기를 끕니다. 그렇게 루이뷔통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최대의 여행용 가방 업체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1936년 비통 가문 3세 경영에 들어가서는 파빌론 백, 빠삐용 백이죠. 이런 거 등장해서 제품 라인업이 더 다양해졌고요, 특히 전후에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던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일본에서는 공공연하게 루이뷔통을 들고 다니는 게 성공의 상징이다 이런 얘기가 있었대요. 일본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가는 족족 루이뷔통을 사 갖고 오는 거죠. 하지만 판매량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루이뷔통이 아주 크게 확장하진 못 했어요. 매장 수도 적었고요. 60년대나 70년대 초반 같은 시절에 파리에 가서 루이뷔통을 살려면 줄을 2시간 이상 서야 되는 것도 다반사였대요. 창업자, 그의 아들, 그의 손자로 이어지던 가족 경영에 약간의 변화가 생깁니다. 1977년에 철강 유통사로 수완을 발휘하던 창업자의 증손녀의 남편이죠, 루이뷔통 창업자의 증손녀 사위, 앙리 라카미에가 그룹의 키를 잡습니다. 조금 변화가 생긴 거죠. 근데 라카미에는 아주 공격적인 사업자였어요. 그리고 사위였지만 그 집안 직계들보다 루이비통이라는 이름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어요. 북미사장에 공을 들였고요, 아까 일본에서 인기 되게 많았다고 했잖아요. 1978년에는 일본에 매장을 엽니다. 그리고 84년에는 한국에도 진출하는 등 아시아 시장도 공략하죠. 음악회나 전시회, 요트 경기처럼 부유층이 즐기는 문화이벤트에 후원을 강화합니다. 이 시절에 매출과 회사 규모가 전보다 급성장하죠. , 그런데요, 창업자, 아들에서 사위로 경영의 축이 옮겨가는 변화가 있었고 회사도 커졌지만, 이때가지만 해도 루이뷔통은 종합적인 명품 업체가 아니라 명품 여행용 가방, 핸드백 만드는 가방 업체였어요. 그래서 왜 첫 부분에 루이뷔통이란 거인이 100년 넘게 잠들어있다시피 했다 이렇게 말씀드렸잖아요. 그게 이런 이유고요. 그러면 루이비통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추게 되는 진정한 변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언젠가 하면 뷔통가문의 패밀리 비즈니스였던 루이비통의 주인이 바뀌면서부터입니다. 바로 LVMH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입니다.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바로 그 사람이 변화를 설계한 주인공입니다. LVMH의 태생부터는 다음 편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루이뷔통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마크 제이콥스, 버질 아블로

루이뷔통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루이뷔통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추게 되는 진정한 변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언젠가면 뷔통가문의 패밀리 비즈니스였던 루이뷔통의 주인이 바뀌면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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