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트 보, 피에르 베르타이머,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
1924년 에르네스트 보, 피에르 베르타이머,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 이렇게 셋이 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차려서 샤넬이 그중에서 수익 10%를 가져가기로 합니다. 근데 나중에 10%밖에 안 받기로 한 걸 두고두고 후회를 하면서 계속 소송 전을 펼칩니다. 근데 연애가 준 선물은 이 향수뿐만이 아니었어요. 드미트리 대공 만날 때 샤넬은 러시아 귀족들을 많이 챙겨요. 망명해서 러시아에서 왔는데 귀족들이니까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을 거 아니에요. 그때 러시아 전통 자수를 눈여겨보게 되고요. 나중에 도입합니다. 그리고 자수의 관리는 드미트리 대공의 동생이었던 마리아한테 맡기죠. 또 할 줄 아는 게 없던 다른 러시아 귀족들, 근데 막 생긴 건 잘난 사람들한테는 모델시키고 점원 일자리도 줍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공작 엄청난 부자였다고 했잖아요. 샤넬이랑 둘이 요트하고 승마하고 사냥하고 낚시하고 이렇게 다닐 때, 영국 남자들이 입던 소재를 눈여겨봐요. 그 소재가 바로 나중에 샤넬이 쟈켓에 쓰게 되는 트위드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샤넬이 13살 연하의 나치 독일 외교관 군터 폰 딩클라게를 만나다가 2차 대전 끝나고 나서 부역했다고 연행이 되거든요. 그때도 영국의 처칠 수상과 친했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도움을 받았단 얘기도 있어요. 훌륭한 연인들이 많았죠. 하지만 샤넬도 2차 세계대전을 피해 가진 못했죠. 전쟁 기간에 향수랑 액세서리 매장 말고 거의 모든 매장이 문을 닫고요.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나치 독일 외교관과의 연애가 문제가 되면서 샤넬은 프랑스 밖으로 쫓겨나다시피 합니다. 나중에 샤넬이 그랬어요. **예순 다 된 나이에 어떤 젊은 남자가 맘에 든다는데 그 남자 신분이 뭔지 따질 겁니까?** 그리고 그때 샤넬의 조카가 나치 독일에 포로로 잡혀 있던 사연도 있었고요. 나치 독일한테 밉보이면 곤란했던 거죠. 어쨌든 프랑스에서 외면받았던 샤넬은 스위스로 건너가서 서서히 잊혀 갑니다. 그리고 패션계는 다시 여성의 몸매를 두드러지게 하고 화려한 옷차림을 한 디올에게 왕좌가 돌아갑니다. 샤넬이 설 자리는 없어졌어요. 그렇게 14년이나 흘렀습니다. 샤넬은 71살이 됐어요. 근데 샤넬은 복귀를 준비합니다. 샤넬이 그저 향수 브랜드쯤으로 잊혀 가던 1954년 2월이었어요. 샤넬이 파리에서 패션쇼를 합니다. 기대와 달리 대참사 수준이었어요. 여전히 프랑스와 유럽은 샤넬을 원하지 않았던 거예요. 패션잡지들도 구닥다리 하고 혹평을 해댔죠. 하지만 미국에서 반전이 찾아왔습니다. 샤넬의 과거를 문제 삼았던 유럽과 달리 미국은 샤넬의 과거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어요. 복귀 패션쇼에서 등장했던 옷들을 고급 상점가에서 막 주문하기 시작했어요. 미국 언론들도 열광했어요. 특히 러시아 망명자 출신의 언론인들이 샤넬한테 막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거든요. 아까 러시아 귀족들 어려울 때 샤넬이 파리에서 챙겨줬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자수의 책임자였던 드미트리 대공의 동생 마리아가 뉴욕에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망명 귀족들이 뉴욕에 살고 있었죠. 그 사람들이 샤넬을 잊지 않은 거죠.화려한 디올보다 샤넬이 스타일이 단순해서 업자들이 베끼기도 좋았대요. 얼마나 인기였냐면요, 심지어 JFK 대통령이 암살당할 때 그 옆에 있던 재클린 여사의 피로 얼룩진 드레스가 샤넬이었을 정도니까요. 아무튼 미국이 샤넬을 되살렸고 이게 다시 프랑스와 유럽을 움직였습니다. 샤넬이 돌아온 거죠.
베르타이머 가문과의 전쟁과 화해
그럼 베일에 싸인 샤넬의 주인, 비밀의 부자들 얘기를 할 때가 됐습니다. 아까 샤넬 No.5 대량생대 할 때 베르타이머 가문과 손을 잡았다가 계속 싸웠다고 했잖아요. 베르타이머는 유태인 가문이에요. 나치 독일이 침공하자 프랑스를 떠나서 미국으로 갑니다. 샤넬은 이때를 노려요. 원래 있던 법인을 해산시키려고 한 거예요. 그러면 계약은 없어지지만 향수는 남을 테니깐요. 그렇지만 베르타이머 쪽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요. 먼저 미국인 특사를 프랑스에 보냅니다. 그리고 나치 독일의 협력자였던 펠릭스란 사람의 회사 지분을 사들여요. 그리고 샤넬이 덤비기 시작하니까 샤넬 향수 지분을 아까 그 펠렉스한테 넘깁니다. 나치 독일의 협력자였으니까 나치가 그 회사를 그냥 내버려 두었겠죠? 샤넬은 없애고 싶어 했지만…그리고 나치 독일이 패전을 하니까 전범이 된 펠릭스는 다시 샤넬 향수를 베르타이머 가문에 넘깁니다. 그러면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죠. 결국 이러한 싸움 끝에 샤넬은 전 세계 향수 판매 수익의 2% 그리고 죽을 때까지 숙박비, 세금, 비서와 하인, 차량, 기사 이 모든 걸 제공받기로 합니다. 일종의 종신연금이죠. 그리고 합의를 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이렇게 막 치열하게 싸우던 샤넬과 베르타이머 가문이 둘이 친해졌어요.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우정이 생긴 거죠.그리고 바로 이 베르타이머 가문이 지금도 샤넬의 최대 주주입니다. 베르타이머 형제가 각각 35조 원씩 재산을 보유하고 있어서 현재 세계 37위 부자입니다. 이건희 회장보다 약 15조 정도 많아요. 그리고 1971년 쉬지도 않고 바쁠 땐 먹지도 않고 혼자 있는 걸 못 견뎌하고 그래서인지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그래서 더 직원들 괴롭게 하고 집에 못 가니까요. 그랬던 샤넬이 8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말년에 종손녀한테 그랬데요. **너희가 옳다. 나는 혼자고 내 인생은 실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업적을 이루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샤넬인데 그의 죽음 이후 회사는 꼬꾸라지기 시작합니다. 맞수이자 친구였던 베르타이머도 죽고 없어졌는데 그 아들은 회사에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뭐 죽으라는 법 없는 거죠. 이때 손자가 등장합니다. 25살의 알랭 베르타이머가 경영권을 잡아요. 나이는 어렸지만 정신줄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었어요. 새 경영진을 영입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등장하죠.
패션왕 칼 라거펠트의 등장
독일 출신인데 파리 디자이너 콘테스트에서 입생로랑과 함께 우승해서 패션계에 데뷔한, (참고로 그때 심사위원이 피에르 발망과 허버트 드 지방시이었어요) 그리고 이후 발망, 발렌티노, 클로에, 펜디 등에서 승승장구하던, 디올 팬츠를 입겠다고 극한의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책까지 낸 전설의 패션왕이죠. 근데 왜 꼭 칼 라거펠트여야 했을까요? 2002년 미국 언론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부활을 꿈꾸던 샤넬 경영진이 칼 라거펠트를 아주 오랫동안 눈여겨보고 있었다. 뛰어난 사람이란 건 이미 입증이 되고 검증도 했는데 결정적인 게 뭐였을까요? 라거펠트의 작업들을 쭉 다 살펴봤데요, 그랬더니 이렇게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샤넬을 카피하거나 샤넬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는 거예요. 진짜가 나타났구나. 이 사람이라면 샤넬을 완전히 바꾸고 부활시킬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리고 1983년 샤넬에 영입된 칼 라거펠트는 샤넬을 만든 코코샤넬의 스타일을 부활시키고 이걸 새롭게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보통 라거펠트가 샤넬의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들 얘기를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겁니다. 보이 카펠과의 연애 시절 사진을 비롯해서 샤넬이 찍힌 모든 연애시절의 사진들을 라거펠트가 한 장 한 장 다 찾아봤대요. 그리고 코코 샤넬의 당시 감정을 떠올려 본 거죠. 그걸 기반으로 트렌디함을 더해서 샤넬 스타일을 되살려냅니다. 라거펠트 부임 이후에 샤넬은 완벽하게 부활하죠. 그러면서도 라거펠트 재임 거의 36년 동안 샤넬은 다양한 변화를 꾀합니다. 그대로 멈춰 있지 않았어요. 패션소에 모델뿐만 아니라, 키아라 나이틀리, 키이라 나이틀리, 크리스틴 스튜어트, 카이아 거버, 이런 셀럽들을 대거 등용했고요. 그리고 지디처럼 그 시대에 가장 화제가 되는 영향력 있는 셀럽들을 골라서 초대장을 보내고 쇼에 초청합니다.
20세기 여성 패션의 혁신가, 가브리엘 샤넬
언젠가 샤넬이 그랬데요. *왜 유명하고 돈까지 많은 남자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건가요? **아주 부자인 남자는 더 이상 남자가 아니다. 산토끼나 여우처럼 쫓기는 신세다.** 다들 그 남자를 그냥 한 인간이 아니라 사냥감으로 여긴다는 거죠. 근데 샤넬이 뭐라고 했냐면 **나는 그 남자들을 유혹하려고 하지 않았어** 가장 화려한 상대가 자신에게 스스로 다가오게끔 만들었던 거죠. 지금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받는 평가도 그 얘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요. 어떤 유명한 패션계 인사가 그랬습니다. *생기고 없어지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샤넬은 영원히 샤넬일 것이다** 가장 강인하고 능력 있고 로맨틱한 삶을 살았던 코코샤넬, 그리고 브랜드를 완전히 부활시켰던 패션왕 라거펠트까지 떠나보냈던 샤넬이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브랜드일 수 있을지 지켜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