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매혹시키는 샤넬

블랙핑크 제니 하면 뭐가 떠오르죠? 샤넬…CHANEL

샤넬 제니
제니

인스타 국내 팔로우 1위 이 정도면 산술적으로 하면 포스팅 한 장 협찬에 6억 원 정도 든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아무튼 제니한테는 인간 샤넬이라는 별명이 있죠. 그리고 역시 이 브랜드 하면 지디도 빼놓을 수 없어요.

샤넬 지디
지디 드레곤

고가의 가방에 스스로 그림을 막 그리는데 그게 더 있어 보이게 만드는 이 브랜드 최초의 아시안 남성 글로벌 앰배서더 이 브랜드 때문에 막 달리는 사람들도 화제가 됐어요. 가격을 매년 올린다고 뭐라고 하면서도 막상 가격 올리기 전날에는 백화점에 줄 서고 백화점 셔터 올라가는 순간에 막 달리고 결혼할 때 이 브랜드 백 사는 분들도 되게 많거든요. 근데 정작 그 백은 장롱 안에서 더 많이 산다는 얘기도 있고요. 아무튼 오늘 주제의 주요 등장인물은 가장 로맨틱하고 야심만만하게 큰 성공을 거뒀지만, 평생 한 남자를 잊지 못했던 설립자 그리고 죽어가던 브랜드를 완벽하게 되살린 패션왕. 그리고 베일에 싸인 비밀의 소유주까지 다른 데는 다 바뀌어도 여기는 영원할 거라는 오늘의 주제는 패션 제국 샤넬입니다. 제니 말고 샤넬 하면 떠오르는 것은?

트위드 재킷?

트위드 자켓
샤넬 트위드 자켓

매년 가격이 올라가는 천만 원 육박하는 핸드백?

샤넬 핸드백
샤넬 핸드백

더블 C 마크?

더블 C 마크
더블 C 마크

샤넬 No.5 향수?

No.5 향수
No.5 향수

샤넬 하우스의 역사와 대표라인

근데 그전에 이걸 먼저 한번 생각해 볼게요. 왜 나는 돈도 없고 백도 없고 학벌도 부족하고 얼굴도 남들이 안 알아주고 외모도 별로일까?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샤넬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던 한 소녀로부터 시작됩니다.

소녀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이었어요.

가브리엘 샤넬
가브리엘 샤넬

19세기 후반에 태어나서 12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잡상인 아빠가 딸들을 버립니다. 나중에 어른이 된 샤넬이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12살 때 모든 걸 빼앗겼다. 그때 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보육원에 버려졌는데 그때 생계에 도움이 되라고 배운 게 바느질이었죠. 아무튼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막 애를 쓰다가 군인들이 주 고객이었던 뮤직홀에 가수 자리를 얻었어요. 처음엔 보조였는데 큰 인기를 끌죠. 그때 코코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자주 불렀던 레퍼토리의 제목이었어요. 그렇지만 샤넬은 어두운 기억이었는지 그 별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죠. 아무튼 그러다가 기마대에서 복무하던 발장이란 사람을 만납니다. 경마에 환장하는 종업원1천5백 명 있는 공장집의 아들이었어요. 발장은 사실상 직업이 부자였어요. 그래서 경마에 쓸 말을 키우려고 저택을 마련합니다. 샤넬한테 그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하고 1907년에 샤넬이 그 집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운명이 바뀌죠. 근데 샤넬이 유행시킨 아이템들 보면 동시대 다른 아이템들에 비해서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좀 활동성 있는 것들이었어요. 발장의 집에는 샤넬 말고도 다른 여자들도 살고 있었어요. 근데 그 여자들이 다들 몸매를 드러내는 화려한 드레스를 귀부인풍을 따라 해서 입고 거기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렇게 소일했데요. 하지만 샤넬은 몸이 깡말라서 그런 옷을 싫어했고요, 모자도 작고 치렁치렁하지 않게 뭐 이런 것들을 자기가 만들어서 썼어요. 그러면서 말 타는 데 집중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무엇보다 이런 생각이 있었대요. 집주인 한마디면 쫓겨나는 정부로 늙고 싶지 않다. ! 돈을 벌어야겠구나. 하지만, 방법이 없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귀인을 만나게 되는데요, 시름에 빠져서 말을 타러 간 샤넬이 초록빛 눈동자의 영국 남자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샤넬이 평생 동안 유일하게 사랑한 남자였다는 보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아서 카펠, 발장의 친구였죠. 참고로 샤넬의 보이 백 역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겁니다.

샤넬 보이백
샤넬 보이백

아무튼 카펠은 석탄 개발에 돈을 투자해서 큰돈을 번 젊은 재벌이었어요. 근데 뭐에 반했을까요? 초록빛 눈동자와 잘생긴 외모, 그리고 자기한테 무관심한 태도였데요.그리고 얼마 뒤에 샤넬이 발장한테 모자를 만들어서 팔아보겠다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1909년에 파리에 있는 발장 집으로 가서 작고 심플한 모자를 만들어서 팔기 시작해요. 잘 팔렸어요. 그때 샤넬은 생각합니다. 더 큰 물로 가서 비싸게 팔아야겠다. 근데 돈이 없었죠. 그때 바로 그 사람이 나타납니다. 돈을 안 빌려줬던 발장과 달리 카펠은 은행 대출을 받게 해 줬어요. 그래서 모자를 파는 샤넬의 첫 매장이 깡봉가에 만들어집니다. (1918년 파리 깡봉가 31번지 샤넬 꾸뛰르 하우스 오픈)

샤넬 매장
샤넬 초기 매장

근데 샤넬은 나중에 알게 돼요. 카펠이 보증만 섰을 뿐 아니라 샤넬이 돈을 찾다가 모자라면 자기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한 거예요. 나중에 샤넬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그는 나의 오빠였고, 아버지였고, 가족이었어.”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배움이 짧았던 샤넬이 자존심을 지키면서 교양을 쌓을 수 있게 당대의 예술가들을 소개해 줬습니다. 그리고 도빌이란 휴양지에 가게를 내줍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라. 사업을 더 키우라는 거죠. 왜냐하면 안목 있는 사업가였던 카펠이 휴양지에선 사람들이 더 멋을 부릴 거다. 이걸 내다봤던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샤넬이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합니다. 샤넬 스스로 너무 말랐다고 생각해서 코르셋이 없어도 되는 약간 헐렁한 편안한 옷차림을 만들었는데, 그게 휴가 때 편안하면서도 예쁜 옷 찾던 사람들한테 인기를 끌어서 많이 팔려요. 키가 별로 안 크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50년대엔 투톤슈즈라는 걸 내놔요.

샤넬 투톤 슈즈
샤넬 투톤 슈즈

베이지색을 띠어서 다리는 길어 보이고 구두코에 검정 색감을 갖다 대가지고 발은 작아 보이게, 남자들 운동복이나 속옷에 쓰이는 땀 흡수 잘하는 원단도 여성복에 사용했고요. 그러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집니다. 근데 이게 샤넬한테는 오히려 기회가 돼요. 카펠이 또 중요한 조언을 해주거든요. “절대 가게문 닫지 말고 있어라.” 진짜 카펠의 말처럼 휴양지 두 곳에 샤넬 매장이 있었거든요. 근데 파리지앵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귀족들이 피난을 하러 몰려온 거예요. 샤넬의 전 유럽으로 퍼지는 계기가 됩니다. 또 전쟁 나간 남자들 대체해서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많이 하기 시작했는데 드레스 이렇게 큰 거 입고할 순 없을 거 아니에요. 편하고 예뻤던 샤넬 스타일이 여기서 또 인기를 끕니다. 다른 얘기지만, 샤넬은 액세서리에 진짜 보석을 안 쓰기로 유명했어요. 아름다움을 대중화시킨 거예요. 샤넬은 연인 카펠이 귀족과 결혼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자기 연인처럼 샤넬 스스로도 야심가였기 때문에 이해했던 거죠. 그리고 그때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를 자릅니다. 짧게 잘라요. 근데 또 이게 유행이 돼요. 실제로 나중에 카펠은 귀족과 결혼을 하고요, 그래도 샤넬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됩니다. 1919년 어느 겨울날 새벽에 누군가 샤넬 집 초인종을 누가 계속 누릅니다. 말리는 하인을 뿌리치고 들어와서 카펠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이런 소식을 전하죠. 샤넬은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하룻밤을 꼬박 새워서 사고 지접으로 이동합니다. 사고 지점에 도착해서 샤넬은 아직 치워지지 않던 차량을 어루만진 다음에 바닥에 주저앉아서 몇 시간 동안 통곡을 했데요. 집에 돌아온 샤넬은 커튼, 벽지, 베개, 이불까지 모든 걸 검은색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훗날 이렇게 말하죠. “나는 카펠을 잃으면서 모든 걸 잃었다.” 여기서 잠깐, 샤넬한테 가장 많은 돈을 벌어준 제품이 뭘까요? 메릴린 먼로 *내가 밤에 걸치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라고 했던 샤넬 No.5 향수입니다. 제일 유명한 소재는? 트위드. 스코틀랜드 인근에서 많이 쓰였던 겁니다. 다시 첫사랑의 죽음으로 돌아가서 왜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히네. 샤넬은 그 이후에 아주 유명한 귀족들을 계속 만납니다. 러시아 황제의 조카였지만 혁명으로 쫓겨났던 드미트리 대공 그리고 집이 여기저기 되게 많은데 그중 한 집 차고에만 가도 롤스로이스가 17대나 있다는 유럽 최대의 부호 대영제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이죠. 그리고 이 만남들에서 샤넬은 영감을 얻습니다. 샤넬 더블 C마크가 언제 처음 나왔을까요? 일단 드미트리랑 휴가를 갔다가 향수를 만들고 있었던 에르네스트 보라는 사람과 연결이 됩니다. 안 그래도 향수를 만들고 싶었던 샤넬한테 에르네스트 보가 10가지 시제품을 가져와요. 그리고 샤넬이 마음에 들었던 다섯 번째 제품을 고르고 이름을 붙입니다. 샤넬 No.5. 1921 5 5일 출시된 이 향수에 처음으로 더블 C마크가 붙습니다. 근데 당시 향수의 이름이 어땠는지 알아요? 봄의 욕망, 저녁의 도취, 뭐 이런 이름들이 일반적이었요. 근데 샤넬은 파격적인 이름을 붙인 거죠. 샤넬은 나중에도 어깨 끈 있는 핸드백을 내놓고 1955 2월에 출시했는데 그래서 이름을 이렇게 붙이죠. The 2.55 Bag.

샤넬 2.55백
샤넬 The 2.55 백

처음엔 향수를 VIP 고객들한테 몰래 슬쩍슬쩍 주는 식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이게 소문이 퍼지면서 물량을 댈 수 없을 만큼 많이 팔립니다. 근데 대량생산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바로 그때였어요. 파리의 유명 백화점 라파예트 주인이 샤넬을 찾아옵니다. 사람을 소개해줘요. 당시에 연예인 브랜드로 유명했던 부르주아 화장품의 재벌 피에르 베르타이머였죠. 그래서 1924년 에르네스트 보, 피에르 베르타이머,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 셋이 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이후 스토리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 CHANEL(샤넬) 역사와 디자인 이야기 (후편)

에르네스트 보, 피에르 베르타이머,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 1924년 에르네스트 보, 피에르 베르타이머,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 이렇게 셋이 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차려서 샤넬이 그중에서 수익 10%

e-skyway.tistory.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