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의 탄생

크리스천 디올이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에서 활동한 시간은 딱 10년이예요. 불과 10년 밖에 안 됐는데 왜 그랬을까요? 크리스찬 디올은 1905년 정원에 꽃이 가득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부잣집에서 태어나요. 영국에 도버 해협 건너편에 있는 프랑스 노르망디. 디올은 항상 잘 차려입은 집안 어른들을 보면서 자랐는데 아무래도 이거에 영향을 받았겠죠? 근데 디올은 자기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자꾸 관료가 되라고 해요. 그래서 전공도 부모님 뜻에 따라서 정했는데 마음을 못 잡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그런 인물들은 많았어요.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도 자기는 예술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다른 거 하라고 해서 정치학을 전공했고요.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도 전공은 법학이었어요. 아무튼 근데 부모님이 디올의 열정에 못 이깁니다. 그래서 결구 화랑을 열어줘요. 갤러리를 열어 준 거죠. 그런데 갤러리를 연 지 얼마 안 돼서 집안이 폭삭 망합니다. 결국 갤러리도 문을 닫죠. 지금과 달리 당시 26살이면 완전 어른으로 취급받던 나이였거든요. 한참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에 집이 망하고 갤러리도 문 닫고. 그럼 어떻게 했을까요? 진로를 바꿨을까요? 입에 풀칠은 해야 되니깐 그림을 그려서 디자이너들 옷가게에 팔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로베르 피게라는 디자이너의 눈에 들어서 그 하우스의 수습 디자이너가 되죠. 이게 디올 30대 초반의 일입니다. 이후엔 디올은 뤼시앵 를롱이란 사람의 하우스로 옮겨서 디자인을 계속합니다. 참고로 그때 같이 일했던 수습 디자이너가 지방시발망이에요. 이렇게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갔는데 디올의 나이는 어느덧 40대 초반이 됩니다. 나이가 좀 들어버린 거죠. 나이 마흔쯤 되면 어떨 것 같아요? 아무튼 그때쯤 마흔을 넘은 디올이 어렸을 적 고향 친구 소개로 한 사업가를 만납니다. 근데 그 사람이 킹 오브 코튼이라 불리던 섬유 재벌, 프랑스 최고의 부자 마르셀 부삭 이었어요.

부삭과 첫 디올 하우스

그런 대부호 부삭이 디올을 인정해서 한 디자인 브랜드의 책임자 자리를 맡아달라고 제안을 해요. 디올은 망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평균 수명을 살펴보면 40대 초반의 나이는 지금으로 치면 50도 넘은 나이예요. 일단 그 나이에 안정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 이거 자체가 쉽지 않았을 거고요. 아마도. 대부호 부삭을 소개해 준 어렸을 적 고향 친구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 시절에 디올이 길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3번이나 만났어요. 계속 마음을 못 정하고 있는데 왜 얘를 계속 만나지? 그리고 마지막 만남 때는 길을 걸어가다가 뭔가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는데 그러다 고개를 들어서 딱 쳐다보니깐 영국대사관이 있는 거예요. 근데 아까 디올의 고향을 자꾸 얘기했었냐면 노르망디 지방이 도버 해협 건너편에 영국이 있다고 했었잖아요. 영국대사관을 보고 디올이 고향을 생각한 거예요. 아 고향 친구. 그 녀석이 고향 친구였지. 아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닐지 몰라. 그 친구가 대부호 부삭을 소개해 줬는데. 그리고 발에 걸려서 넘어질 뻔한 물건을 들어서 보니까 이게 별 모양이었어요. 브로치나 장식구에서 떨어진 것 같은 그때 디올이 이렇게 생각했대요. 이것은 계시다. 왜 옛날에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그랬잖아요. 방향을 정할 수 있으니까. 아 저 별이 나를 지켜주는구나. 우릴 지켜주는구나. 디올이 그때 생각한 거예요. 이 별 모양을 발견한 건 내 갈 길에 대한 계시는구나.그래서 다시 대부호 부삭을 만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것은 운명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말해보자. 그래서 부삭한테 내 이름을 딴 가게를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부삭이 그걸 받아들이죠. 그렇게 첫 번째 디올 하우스가 탄생합니다. 디올의 마음속엔 아주 큰 열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바로 그래서 디올이 디자인에 별 모양이 자주 등장하는 거고요. 숫자 8의 경우에도 비슷한데 일종의 미신까지도 자신의 꿈과 연결시켰던 디올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숫자였대요.

디올 별
디올 별
디올 8
디올 8

인간의 몸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나중에 성공을 한 디올이 디자인 하우스를 옮기거든요. 옮긴 디자인 하우스는 파리 8구에 있고 건물도 8층이고. 아틀리에도 고쳐서 8개로 만들었어요. 별 모양과 숫자 8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도 집착을 했거든요. 항상 네 잎클로버와 두 개의 하트모양 그리고 나무 한 조각, 금 한 조각을 가까이 놓고요. 나중에 쇼를 열 때도 모델 한 명은 반드시 백합을 들게 했대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1946년에 첫 가게를 연 디올은 전쟁 이전의 기억을 사람들한테 되살려주는 거예요. 화려했던 좋은 시절의 기억이요. 실루엣이 강조되고 고급 옷감을 사용한 아주 화려한 컬렉션을 선보여서 극찬을 받습니다. 이때 디올의 스타일에는 NEW LOOK이라는 이름이 붙어요.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바다 건너 영국에서도요. 당시 영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야 되니까 아껴 쓰고 검소하게 입고 화려하게 다니지 말자 이런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왕실부터 디올의 스타일에 열광을 할 정도였어요.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 마거릿 공주가 디올의 스타일을 열렬히 사랑했던 걸로 되게 유명하거든요. 왕실의 사랑 때문에 디올은 더 명성을 얻습니다.

다이애나 디올
다이애나 디올

디올 스타일을 사랑한 영국 공주들을 비롯한 세계의 여성들이 디올한테 정말 부르르 가져다주고 전 세계로 다닐 수 있게 해 주고 곳곳을 여행하게 해 준 거죠. 그리고 현재 디올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도 여성이죠. 바로 이분이 현시점에서도 디올의 명성을 계속 드높여주고 있는 데다가 일개 건설업자에 불과했던 베르나르 아르노가 디올 인수를 발판 삼아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LVMH라는 명품 제국을 세웠으니까 디올이 14살 때 들었던 그 예언이 실현됐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이렇게 아주 강렬하고 화려한 인물들이 만들어 온 브랜드 디올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소년 디올이 받았던 계시처럼 디올이 계속 사랑을 받고 그 이름이 계속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보시면 어떨까요?

 

 

디올은 아무나 협찬하지 않는다..가장 화려한 명품, 디올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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